이모저모

박길성 교수님을 만나다.

Hanwool Albert 2022. 5. 19. 22:21

2022년 5월 19일, 사회학의 대가 박길성 교수님을 뵈었다.

 

 

내가 금융 데이터 사이언스를 공부하기 시작했던 계기는 2020년 가을, 박길성 교수님의 수업이었다.

 

교수님께서는 항상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으셨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의 문이 잠기고, Zoom 너머로만 학교의 정취를 느낄 수 있던 그 당시에도

 

교수님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자주 연구실로 초대하여 대화를 나누셨다.

 

교수님은 당시 학생들의 주된 고민이 '취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셨고

 

수업이 끝나가던 겨울에 우리에게 한가지 과제를 내셨다.

 

 

겨울 방학동안 자신을 한번 찾아보길 바랍니다.

자신이 정말 하고싶었던 것에 도전해보고

이번 겨울이 지나면

저에게 메일로 보내주세요

어땠는지

 

 

당시의 나는 삶에 많이 지쳐있었다.

 

가족의 일, 전역 후의 삶, 내가 책임져야 하는 모든 것에 많이 질려있었다.

 

교수님의 따뜻한 마음의 담긴 저 과제도 처음 들었던 그 당시엔 잔소리처럼 귀를 그대로 통과하여 사라졌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 내 마음속엔 많은 울림이 일었다.

 

 

금융 데이터사이언스에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이는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이지만 흔히 생각하는 성공(전문직이라든가..)으로의 길은 전혀 아니었다.

 

눈 딱 감고 회계사 유예시험만 집중하면 남들이 말하는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는데

 

교수님의 말씀은 그 해 겨울까지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아 해보고싶은데..."

 

조금만 더 가면, 회계사 수험생활을 깔끔하게 마치고 SKY출신 빅펌 회계사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결국 내 마음의 울림에게 굴복하고 12월 어느날부터 무작정 데이터 사이언스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주변에서는 멍청한 짓이라고 손가락질을 많이 당했다.

 

가족들에게도 심한 욕을 받았고, 친구들과 선배들에게도 아쉬운 소리를 많이 듣게 되었다.

 

그래도 공부하면서 너무 즐거웠다.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고, 체중이 엄청 줄어든적도 있었지만 이 모든 과정이 참 즐거웠던 것 같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목표에 조금은 다가섰던 2021년의 겨울, 나는 교수님께 늦은 과제의 답장을 보냈다.

 

(중략)
.
.
작년 당시엔 교수님께서 취업 고민에 대한 대답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보라'라고 한 것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 추구하는 것을 좇다 보면 취업이나 진로가 따라오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 교수님의 그런 조언이 없었더라면 저는 아직도 짙은 안개속을 헤매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저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삶에 대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다면

교수님께서 그때 해주셨던 말씀을 사람들에게 해주겠습니다.
 
 
 
이한울 올림.


 

교수님께서는 따뜻한 답장과 함께 앞으로의 성장을 지켜보겠다며 종종 소식을 전해달라는 말씀을 주셨다.

 

 

참 따뜻한 경험이었다.

 

내 삶에 있어서 큰 영향을 주었던 어른은 몇 분 없었기에

 

나라는 제자를 대견해하는 스승을 만난 것은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 뒤로 2021년에 비해 비교적 지지부진한 2022년을 보내며 교수님과 몇번의 메일이 오갔다.

 

그리고 5월 19일, 2020년 가을 종강 이후 2년이 조금 안되는 시간이 지나 교수님을 뵙게 되었다.

 

줌 화면 건너 있었던 제자의 얼굴이라 기억이 없으셨을텐데도 교수님께서는 인자한 얼굴로 맞아주셨다.

 

 

이렇게 제자와 만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는 교수님의 환영과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수님께서 최근 발간하신 서적 'Development and Globalization in South Korea'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한국의 세계화의 명과 암에 대한 얘기, 최근 사회학의 변화에 대한 얘기

 

그리고 교수님이 어떻게 대학원을 가게 되었는가에 대한 얘기

 

짧은 시간에도 참 다양한 주제의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 이제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 되었고 나는 마지막에 교수님께 이런 질문을 했다.

 

"저도 교수님처럼 평생 공부하고 연구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교수님께서는 웃으시며 답변해주셨다.

 

"물론. 지금도 그러고 있는걸!"

 

교수님의 이 답변이 참 가슴을 울렸다. 

 

최근 쌓여왔던 내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말끔히 날아가던 순간이었다.

 

 

 

 

"내가 8월이면 30년 교수 생활을 마치고 정년 퇴임을 하게 되는데, 

 

다음에 볼 땐 이런 연구실이 아니라 밖에서 보게 되겠네.

 

항상 연락 주고, 다음에 또 봅시다"

 

 

"네 교수님, 또 연락 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나는 웃으며 교수님의 연구실을 나왔다.

 

 

전 사회학도로서의 버릇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나의 삶을 항상 사회와의 연결망 속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해왔다.

 

단순히 내가 지향하는 바를 좇는 것을 넘어서 관계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회사에서는 좋은 동료이며, 집에서는 좋은 가족이고, 친구에게는 좋은 친구이고 싶은 마음

 

(도덕적 굴레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언젠가 내 분야에서의 정점을 넘어섰을때 후배에게 있어서도 좋은 선배가 되고 싶었다.

 

 

교수님을 뵙고 돌아오며

 

나도 언젠가는 저런 스승, 혹은 선배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가르치려 하지 않고 깨달을 수 있게 도와주며, 성급히 조언을 던지기 보다는 차분히 들어줄 수 있고

 

좁은 경험으로 결론내리기보단 넓은 식견으로 신중히 판단할 수 있는 사람

 

따뜻한 마음으로 남을 품어줄 수 있는 사람

 

언젠가 나의 방에, 20대의 내 얼굴을 한 후배가 들어왔을 때

 

웃으며 반겨줄 수 있는 그런 선배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라는 작은 꿈을 가슴에 품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